본문 바로가기
책방/non-Novel

[책방] 심채경 -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by lucky__lucy 2023. 1. 7.

(출처: 출처 :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barcode=9788954677257#N)



1. 땅을 보지 않는 지리학과 학생이 읽은,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과 교수님의 글


천문학자가.. 별을 보지 않는다는 건.. 무슨 말인가. 도서관 신간 코너에 새로 도착한 책인데 제목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읽다 보니 저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아닌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으로 학위논문을 썼고 지구의 ‘위성’인 달을 공부한다. 또, 관측은 잠깐이지만 그 데이터 분석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다고 한다.

“상당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보낸 후, 국내에서 유일무이한 ‘타이탄 전공자’가 되어 대학원을 졸업했다. 물론 박사는 모두 유일무이한 존재다. 남의 연구를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는 없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본다는 선입견이 있었던 나는,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도 지리학과지만 GIS를 전공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 인문 경관을 보는 답사는 거의 가지 않고 컴퓨터에서 shp 파일을 가장 많이 열어본다. 그래서 ‘지리학자는 땅을 보지 않는다’라는 말도 나에게는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공부하는 학문, 그 사람들이 하는 일에 궁금증이 많아서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이나 본인의 학문 인생을 담은 수필이라면 더 재미있게 보는 편이다. 특히, 자기가 몸담은 학문이나 일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존경심이 든다. 이런 복잡한 생각은 아래 문장을 읽으며 내 머릿속에서 나름 정리가 되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도 그들을 동경한다고.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2. 있는 그대로여도 괜찮은 삶

내가 어렸을 때, 적어도 고등학생 때까지는 계획적인 삶을 살며 큰 공을 남기는 이들이 정답 같은 존재였다. 아직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답적 인간의 선 밖에 머무는 나는 ‘계획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강박을 겪기도 했다.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 같은 무계획형 인간이 공부를 해도 되나, 하는 나름 진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10년 뒤엔 내가 어떤 사람일지, 60대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뚜렷한 계획은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MBTI의 대중화 때문인지 무계획형인 ‘P’ 사람들도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위로를 받고 있는 듯하다. 무계획형 P는 자칫 게으르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맡은 일에 책임지고 융통성 있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김연아 선수도, ISFP로 유명한 유재석님도 모두 주어진 일에 그저 최선을 다하는 P 타입이다.

이 책의 저자의 MBTI 타입을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저 오늘 할 일 오늘 하면서 사는 타입이다. 그게 잘 안 될 때도 많지만, 그러려고 노력은 한다.”라는 문장을 봤을 때 J보다는 P에 가까운 타입이 아닐까. 그저 자신의 일에 책임과 최선을 다하는 무해한 사람들. 계획형 인간이더라도, 무계획형 인간이더라도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

"오늘 내가 할 일은, ... 연구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뿐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누군가와 같은 그 삶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3. 여성학자의 길


​같은 건물을 쓰면서도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김상욱 교수님이 추천글을 남겨 관심 있게 읽게 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우리 학교 출신의 선배님이셨다! 이공계라 특히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자 선배 비율이 적어서 한 분 한 분이 귀하다. 특히 석사를 넘어 박사까지, 그리고 공부와 동시에 결혼과 육아까지 하고 있는 선배는 내 주위에 극히 드문 편이라 그분들의 경험담과 조언을 듣기 어려운 현실이다.

나보다 먼저 여성학자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의 연구자로서 삶을 전해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내 후배들에게 학문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멋진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한 문단을 꼽으라면 아래 문단을 고르고 싶다. 과학을 공부하는 학자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묻는다면, 가장 멋있게 답변할 수 있는 대답인 것 같다.

"과학 논문에서는 항상 저자를 '우리(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 논문은 대부분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채워넣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인데, 그래도 논문을 쓰는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고 하는 것이다. ...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

 

 

2021년, 광화문 교보문고

 

2021년 6월에 이 책을 읽고 감상평을 남겨놨었는데, 2023년 1월이 되어 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새해 다짐을 다시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요즘 심채경, 김상욱 교수님이 나오는 알쓸인잡을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앞으로도 방송으로나 책으로 많이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학교 안에서도 마주칠 수 있겠지? 그때는 '저 교수님 팬이에요!'라고 말해보고 싶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아름다운 무언가에 대해서는 ‘별처럼 빛난다’고 말하고, 무언가 간절히 원할 때면 별자리로 운을 점치며 ‘우주의 기운’이 함께하길 빌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달과 별과 우주란 어떤 의미일까. 할리우드 영화 속 과학자들의 ‘액션’은 스릴이 넘치고 미항공우주국과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일지는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그런 뉴스들이 오히려 천문학을 딴 세상의 이야기로 치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속 천문학자 심채경이 보여주는 천문학의 세계는 그러한 스펙터클과는 거리가 멀다. 빛과 어둠과 우주의 비밀을 궁금해하는 천문학자도 누구나처럼 골치 아픈 현실의 숙제들을 그날그날 해결해야 한다. 다만 그 비밀을 풀기 위해 ‘과학적으로’ 골몰할 뿐이다. ‘지구는 돌고 시간은 흐른다’는 우주적이고도 일상적인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는 그러하기에 더욱 새롭고 아름답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_「프롤로그」에서
저자
심채경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21.02.22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잡학사전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의 모든 인간을 탐구하며 나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시간
금 오후 8:40 (2022-12-02~)
출연
장항준, RM, 김영하, 김상욱, 이호, 심채경
채널
tvN
728x90
반응형